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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국의 데이터가라사대] 빅데이터와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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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어느 미술평론가가 화가에게 던진 말이다. 화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론가의 비평이 신문에 실리면서 화가는 졸지에 ‘깊이’ 없는 사람이 돼 버린다. 그 ‘깊이’를 찾아 방황하던 화가는 자살로 생을 끝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서 ‘깊이’를 ‘창의성’, 아니 흔히 쓰는 단어 ‘크리에이티브’로 바꾸면 평론가의 비평은 오늘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다.

“좋은 제안이었어요.
그러나 아직 크리에이티브가 부족합니다.”

제안 발표 뒤에 들리는 이 짧은 한마디에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준비한 사람들은 힘이 빠진다. 아, 이 망할 놈의 크리에이티브가 또 발목을 잡는다. ‘도대체 그 크리에이티브라는 게 뭘 말하는 겁니까?’ ‘그냥 취향을 알려주세요. 그게 빠르겠네요. 빨간색? 파란색?’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천하의 고객 앞에서 어쩌겠는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너무 크리에이티브해서 도저히 현실세계에 적용할 수 없는 제안을 들고 오는 경우다. 마케팅 전략을 기다렸는데 행위예술을 펼치겠다니.

컴퓨터는 빨라서 컴퓨터이고, 인간은 창조해서 인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비즈니스와 사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창의성이 있다. 마케팅, 디자인, 기업 경영을 생각해보자. 지경을 넓혀 저널리즘이나 리더십의 영역을 봐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이 열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창의성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뜬구름 잡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십인십색의 창의성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고객의 마음과 어긋난 창의성이라면 비즈니스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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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데이터가 창의성과 함께하면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급식 시장을 생각해보자. 10조원이 넘는 이 시장은 수많은 기업들의 각축장이다. 만약 여기서 웹사이트를 개편하고 새롭게 마케팅을 할 상황이 됐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콘셉트로 가는 게 좋을까?

어떤 전문가는 ‘엄마의 마음’을 제안한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사회 속에서 급식 시간만이라도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주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전문가는 ‘맛있는 12시’를 말한다. 그래도 결국 맛이 최고라는 것이다. 둘 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혹시 제3의 길이 있지는 않을까?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경험, 직관 등 여러 방법으로 고를 수 있다. 나름대로 다 강점이 있는 결정 방법이다. 그 기반 위에서 얼마든지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이 고객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으려면 좀 더 객관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도울 수 있다.

고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채널과 분석 방법은 많지만 이럴 때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소셜분석이다. 트위터나 블로그 등을 분석해서 사람들이 급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단순히 ‘급식’과 함께 등장하는 단어와 반응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2014년이라면 급식에 대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관심은 (무상급식 논란을 제외하면) 두 가지, 맛과 안전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이야기가 적지 않다. 맛 없는 급식에 질렸고, 잊을 만하면 터지는 식중독 같은 사고에 불안하다. 그렇다면 웹사이트 기획자와 마케터는 그들의 창의성을 어디에 발휘해야 하는가? 불만 가득한 급식자들을 신선하고 맛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야 한다. 다양한 급식 분야와 상황을 세분화하고 더 깊이 들어가면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엄마의 마음’은 그들이 원하는 콘셉트가 아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엄마의 마음이 담긴 맛과 신선함이나 깐깐한 신세대 엄마쯤으로 콘셉트를 잡는 게 좋을 것이다.

데이터 분석이 창의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빅데이터가 ‘빅창의성’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침반이 될 수는 있다. 창의적인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쏟아야 하는지는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 분석 결과가 직관이나 경험과 항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 전문가가 감 잡고 있던 것을 확증해 주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데이터 분석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다 알고 있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던 상황에서 물증을 찾은 탐정이 ‘다 알고 있던 일’이라며 투덜거리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정말 노련한 탐정이라면 심증과 물증을 잘 결합할 것이다.

사실 데이터 분석과 창의성은 훨씬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창의성 또는 창조성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해결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데이터 분석적 사고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여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창의성을 쏟을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 저널리즘까지,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라면 어디서나 접목해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고독한 창의성의 수도원 속에서 신비롭게만 여겨지던 영역들이 데이터와 함께한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뜬구름 잡는 크리에이티브 운운에 답답했다면 다음에는 이렇게 접근해보자.

“저희는 이쪽에 초점을 맞춰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왜냐고요? 데이터가 이렇게 말합니다.”

데이터 가라사대, 이 말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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